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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섬

엠엠케이플러스+토포스 건축사사무소+동심원조경 기술사사무소

박정현(도서출판 마티 편집장)
사진
이현준
자료제공
엠엠케이플러스
진행
이성제 기자
background

섬이 된 공공공간 

 

국립극장은 남산으로, 예술의전당은 우면산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청계산으로 갔다. 복잡하고 켜켜이 얽힌 이야기의 가지를 쳐내고 오해를 무릅쓰고 정리하자면, 이는 왕조 국가의 도읍이 공화국의 수도로 변모하는 여정에서 식민 지배와 군사독재를 겪으며 구 지배세력의 공간과 장소를 시민계급이 전유할 기회를 잃었기 때문이다. 이 실기는 절차적 민주주의가 최소한으로 마련되고 지방자치 제도가 부활한 지 시간이 꽤 흐른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친다. 자본에 의해 공간 재편이 빈틈없이 이루어진 서울 도심 안에 새로운 공공공간을 만들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서울로 7017이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처럼 산업화 시대의 구조물을 리노베이션 하거나 기존 건물을 철거하지 않고서는 말이다. 공연장이 한강 한가운데 간 이유다.

문화시설 건립을 둘러싼 갑론을박을 부추기는 것은 건물에 부여된 임무다. 설령 산 밑에 자리를 잡더라도, 다시 말해 불특정 다수에게 건축이 노출될 가능성이 현격히 떨어지더라도 문화시설에는 단순히 용도를 충족시키는 것 이외의 역할이 부여되었다. 한 국가를 대표하는 문화 시설에 상징적 의미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지난 수십 년 동안 미술관, 박물관, 공연장이 전달해야 하는 바는 지나치게 직설적이고 일차원적인 것들이었다. 국립극장과 세종문화예술회관에는 노골적으로 한국성이, 예술의전당에는 한국성과 서구 부르주아 문화의 혼성이, 순수한 스펙터클이길 원한 DDP에는 (지금으로서는 놀라울 뿐인) 낙관적 도취가 주입되었다. 최근에는 이 모두와 무관한 듯한 중성적인 기하학, 땅에 대한 강조가 반복된다.

정파의 논리에 따른 장소와 상징 정치의 조합은 한국에서 문화시설의 생산 조건이다. 이 조합은 건축을 억압하기도 하지만 생산의 조건이기도 하다. 관건은 외부 변수의 진공상태라기보다는 이 조건을 충족시키면서 동시에 넘어설 수 있는 건축의 가능성과 완성도다. 지금의 노들섬은 기존 프로젝트의 좌초, 정확히는 파기에서 시작한다. 서울시는 2005년 노들섬에 오페라하우스 건립을 발표했고,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르네상스 사업의 일부로 본격화된다. 1980년대 전두환 정권의 사업이었던 예술의전당 이후(오페라 극장은 1993년에 개관) 20년 만에 대형 문화시설을 건립하는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산이 아니라 강이었고, 외곽이 아니라 서울 한복판이었지만 시민의 도시 생활과 유리된 곳이 대지였다는 점은 이전과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다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건축에게 요구된 역할은 크게 달라졌다. 기와지붕이나 삿갓을 연상시키지 않아도 되었고 대신 세계적 도시의 거대한 강 한가운데 솟은 찬란한 조각 같은 건축이 되어야 했다. 그 조각은 고급예술의 장이어야 했다. 설계공모 당선안이 보여주듯 건축은 스펙터클로서의 21세기 문화시설이라는 환상을 표상했다. 이후 시장은 바뀌었고 세계경제는 휘청했다. 매끈한 곡선으로 그린 환상이 유지되기는 힘들었다.

건축의 형태뿐만 아니라 새로운 오페라하우스가 서울에 더 필요한지에 대해 누구도 확답하지 못했다. 이후 몇 년 동안 노들섬은 공사 전 빈 땅을 사용하는 한국의 전형적인 방식대로 텃밭으로 이용되었다. 새로운 노들섬은 정반대의 가치를 추구한다. 자본, 럭셔리, 오페라, 랜드마크의 자리를 참여, 대중, 땅, 친환경 등의 언어가 대신했다. 이미지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행위가 발생하는 장으로서의 건축. 이때 건축은 거의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아야 한다. 중요한 것은 미학이 아니라 윤리적 입장이기 때문이다. 두 차례에 걸친 운영구상 공모와 시설구상 공모는 참여의 실천이기도 했고 더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한 전략을 꾸리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한강 한가운데 위치한 섬, 그것도 대중교통만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곳, 우연히 들를 가능성이 거의 없는 곳을 어떤 기능과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음악을 중심으로 한 문화 플랫폼으로 음악, 문화예술, 생태/환경, 뉴미디어, 개발모델 등 다양한 분야가 협업하고 시민 누구나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복합문화 공간이라는 운영 계획이 세워졌지만, 화려한 수사만큼 이 계획이 제대로 작동하리라 믿은 이는 없었을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운영계획은 설계 도중에도 수시로 변경되었다. 변경된 초기 계획 중에서 설계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설계공모 지침으로 제시된 50m2 내외의 모듈의 포기였다. 이 모듈은 공간을 직접 운영하고 많은 사람들이 계획 및 시공 과정에 개입할 수 있게 하는 공간 단위였다. 엠엠케이플러스는 이 모듈을 5×10m 프리패브 시스템 조합으로 제시했다. 현재의 노들서가 같은 중대형 시설로 운영계획이 변경되자 작은 규모의 여러 행위들을 수용할 것을 전제한 이 모듈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다. 엠엠케이플러스가 염두에 둔 공간구성뿐만 아니라 프리패브 시스템으로 제작, 운송, 설치될 수 있는지를 시험해볼 수 있는 기회도 함께 사라졌다.

표류한 운영계획에 따라 설계변경이 잇따랐지만 엠엠케이플러스가 시종일관 견지한 것은 땅에 대한 해석이었다. 엠엠케이플러스는 노들섬에 새로운 구조물을 세우기보다 땅을 ‘재구성’(reconfiguring)하는 전략을 취했다. 단일한 구조물의 외피 안에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모두 배치하는 것이 아니라 땅의 레벨을 활용하고 작은 단위들을 분절해 외부 공간과 실들이 교차하게 만들었다. 단순한 입방체의 공연장과 다목적 홀을 양 옆에 배치했다. 존재감을 과시하기보다 프로그램 구성 다이어그램을 질서 잡힌 기하학적 형태로 구현하는 접근이다. 모듈 시스템은 사라졌지만 그 기본 크기는 남아 노들섬 전체에 규칙과 리듬을 부여한다. 내외부 공간의 병치를 통해 전체 구조를 형성한 노들섬은 멀게는 김수근의 국립청주박물관, 가깝게는 민현준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맥이 닿아 있다. 건축물의 독자성을 주장하기보다 땅의 형세와 주변의 맥락에 조응하는 것이 우선이다. 멸종 위기종인 맹꽁이가 서식하고 있는 비오톱 1등급지인 노들섬에 유일하다고 하기는 힘들더라도 적합한 전략임은 틀림없다. 하지만 엠엠케이플러스의 유연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지침과 운영계획을 넘어서는 모종의 가능성을 제시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서울시는 화려하고 눈길을 끌며 큰 건물이 아닌 소박하며 눈에 잘 띄지 않으며 작은 건물이 모여 집합을 이루는 공공건축을 선호한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공공건축의 성패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찾는지에 따라 판단한다. 서울시의 용어를 빌리자면 ‘활성화’ 여부다. 시민들이 스스로 참여하고 프로그램에 없는 행위가 일어나기를 기대하나, 눈길을 사로잡는 형태를 지닌 건축은 꺼린다. 미적 체험을 경원시하고 윤리적 태도를 우선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둘을 배타적인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근대 미학의 탄생 이유가 윤리의 보완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돈의문박물관마을이나 노들섬(개장 전까지 노들마을로 불렸다)이 그리는 그림은 북적이는 장날이다. 모여든 사람들의 행위로 채워질 비어 있는 장소를 꿈꾼다. 그런데 노들섬이, 지나가는 버스 안에서 불현듯 한강대교 위에서 내리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까? 인근 거리와 연결을 전혀 기대할 수 없는 노들섬이 전적으로 자신만의 힘으로 우발성을 촉발할 수 있을까? 강 한가운데서 바라보는 한강의 풍광이 가던 길을 멈추게 하는 데 도움이 될까? 개장 후 바로 겨울을 맞은 지금 성패를 판정하는 건 이르지만 어느 것도 쉽지 않을 것이다. 우연한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 곳에서 우발적 사건이 발생하고, 이에 따라 프로그램과 구조가 증식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또 다른 환상일 뿐이다. 이웃 없이 외로운 공공공간에 필요한 것은 더 분명한 기능과 프로그램이지 장날만 기다리는 텅 빈 마당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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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주)엠엠케이플러스(맹필수, 김지훈, 문동환) + (주)토포스건축사사무소(박남규) + (주)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박경탁)

설계담당 

(주)엠엠케이플러스 ‐ 임하린, 한송이, 이지혜, 장수정 

(주)토포스건축사사무소 ‐ 김원영, 이종희, 엄선희, 류진호

(주)동심원조경기술사무소 ‐ 이남진, 조유현, 김건, 박성준, 백규리

국제설계공모  맹필수, 김지훈, 문동환, 박태형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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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서울시 용산구 양녕로 445

용도

문화 및 집회시설, 업무시설, 판매시설, 제1,2종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119,854m2

건축면적

9,619.09m2

연면적

9,349m2

규모

지상 3층

주차

99대 (장애인주차 5대)

높이

14.76m

건폐율

18.17%

용적률

17.66%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철골조

외부마감

무석면 압출성형 시멘트패널, 노출콘크리트, 유형글라스, 로이복층유리

구조설계

새창구조기술사사무소

기계설계

(주)디이테크설비컨설턴트

전기설계

(주)공간이엔지

시공

(주)거성토건, 신성종합건설(주)

설계기간

2016. 8. ~ 2017. 7., 2018. 8. ~ 2019. 4.

시공기간

2017. 10. 27. ~ 2019. 11. 30.

공사비

523억원 (시설조성비)

건축주

서울특별시

운영사

(주)어반트랜스포머, (주)플랙스앤코

경관조명

디자인스튜디오 라인


맹필수
엠엠케이플러스 공동대표이며, 홍익대학교 건축대학 조교수이다. 미국 뉴욕 주 건축사이며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하였으며,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 및 도시설계 석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의 공간건축과 뉴욕 퍼킨스 이스트만에서 다양한 스케일의 건축과 도시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하였다.

문동환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건축학을,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도시설계를 전공하였다. 뉴욕 콘 페더슨 폭스와 포스터 앤드 파트너에서 실무경험을 쌓았고 현재 엠엠케이플러스 공동대표로 건축과 도시를 아우르는 설계 작업을 하고 있으며 미국 뉴욕 공과대학교에서 건축설계를 가르치고 있다.

김지훈
엠엠케이플러스 공동대표이며 한국과 미국의 건축사로서 활발하게 건축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건국대학교 건축공학과와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건축설계를 공부했고, 이후 뉴욕 에스오엠과 헤르조그 엔 드 뫼롱, 바이어 블린더 벨에서 다양한 종류의 설계 작업에 참여했다. 현재 건국대학교 건축전문대학원에 출강하고 있다.
박남규
한양대학교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공간건축에서 14년 동안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공간건축을 나온 후 바틀렛(UCL, 런던대학교)에서 건축디자인을 공부하고 2013년 (주)토포스건축을 공동창업 했다. 현재 세종대학교에 출강하고 있다.
박경탁
박경탁은 (주)동심원조경기술사사무소의 소장이며 미국 조경기술사이다. 서울시립대학교 조경학과와 하버드 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서 조경설계를 공부했고, 민우건축사사무소, O3SCOPE, SWA 샌프란시스코에서 실무를 경험했다. 그는 “생각하는 일과 만드는 일은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지난 15년 동안 미국, 중국, 인도, 한국 등지에서 광범위한 조경설계 프로젝트를 수행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