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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현실을 만났을 때: 서교근생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서재원
사진
진효숙
자료제공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
진행
방유경 기자
background

 

“실존은 본질에 앞선다” 

한국 건축 혹은 디자인에서 무색무취의 미니멀리즘이 권력이 된 지 오래다. 마감재를 두드려보고 만듦새에 경탄하지만 가만히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불편해지는 구석이 있는데 이는 아마 그 이면에 깔린 사대적 본질주의, 더 올바른 형이상학적 이데아가 있다는 교조적 태도에서 느껴지는 구토감 때문일 듯하다. 척박한 우리의 삶과 내가 디디고 있는 도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그 안에서 가능성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우리 건축은 대중들과 멀어지는 것은 물론 글로벌한 관점에서의 고유성 또한 인정받지 못할 것이다.   

홍대라는 지니어스 로사이 

홍대라는 난잡한 동네에 혼자 젠체하는 ‘화이트 박스’ 건물은 사교모임에 잔뜩 긴장하고 나타난 모범생(nerd)처럼 어울리지 않는다. 당장 주변을 둘러봐도 여러 가지 것들이 나름의 존재 이유를 가진 채 조화롭고자 하는 의지 없이 쿨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러한 상황들을 수용하되 건축이 가지는 태생적 질서 안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지가 관건이다. 부조화한 상태로만 놔두면 ‘디자인’이라 불릴 수 없고, 조화로운 상태에만 집착하면 그 또한 힙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어글리 슈즈를 신고 코카콜라를 든 검은 수트 신사가 나타나길 바랐다.

 

임대 근생과 가성비적 평면

땅값이 비싼 홍대에 지어지는 임대 근생은 버릴 곳이 하나도 없어야 한다. 따라서 건물은 컴팩트한 코어를 한쪽에 두고 실내에 기둥 없는 정방형의 임대 공간이 한 층 한 층 쌓인 형식을 가진다. 1층 주 출입구는 코어와 임대 공간 사이를 최소한으로 벌려 생겨난 긴 복도 끝에 위치한다. 그리하여 일반적으로 보이는 ‘홀(hall)’스런 공간은 없으며 코어쪽 벽에는 비상탈출구, 남자화장실, 계단실, 설비 점검구, 여자화장실이 각자 필요한 만큼의 개구부를 가진 채 순서대로 나열된다. 그에 반해 맞은편 유리블록 벽은 복도로 빛을 투과하며 감성을 자극하지만 무자비하게 천장 구조 빔을 시각적으로 토막낸다.​

 

대칭게임의 장난감

자연에서 보듯 가장 안정되고 최적화된 구조의 형태는 대칭이다. 이론적으로도 가장 비용이 적게 드는 구조다. 하지만 조건이 복잡한 도시에서 건축물이 대칭의 조형을 얻기란 쉽지 않다. 작은 땅에 짓는 건물일 경우에는 일조권과 용적률이 그 형태를 결정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러한 사실이 건축가들에게는 편치 않겠지만 그렇다고 그러한 결과를 마치 건축가가 조형 의지를 배제한 채 외부 조건을 겸허히 수용한 듯이 내세우는 것도 좋지 않아 보인다. 서교근생 또한 일조권 사선제한을 받아 4층부터는 셋백(setback)되는 형태를 가지지만 반대편도 동일하게 처리함으로써 마치 외적 제약이 없는 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그로 인해 건물은 구조적 효율을 가질뿐 아니라 콘텍스트에서 분리됨으로써 레고를 쌓은 장난감처럼 귀여운 모습을 띤다.   

 

(비)구축과 표현의 문제

형태가 쉽게 이해되는 데 반해 구조는 생각만큼 솔직하진 않다. 북측 1층 입면에서 기둥마냥 건물을 괴고 있는 금속 오브제는 속이 텅 빈 우편함이며 서측 반지하 입면에 있는 원형 콘크리트 기둥은 실제 기둥이지만 위치로 보면 실상 없어도 무방하다. 말하자면, 서교 근생은 코어벽과 서측면 솔리드 벽체에 매립된 벽보와 벽기둥을 주요 구조로 삼고 나머지 입면 모두는 캔틸레버로 계획된 것으로 어떤 때는 벽구조처럼, 어떤 때는 라멘구조처럼 보이기도 하는 애매한 모습을 드러낸다. 특히 전 층 천장에서 부목처럼 슬래브를 받치고 있는 볼드(bold)한 빔은 전체 구조 시스템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오히려 이에 초록색 페인트를 두껍게 칠함으로써 플라스틱 같은 가벼움과 구조의 묵직함이 섞이도록 하였다. 코어벽 설비 점검구에 그려진 사선은 초록 빔에 대한 그래픽적 유희이다.

 

 

외부마감

벽돌▶ 삼한씨원 

UHPC 3D콘크리트 패널▶ 스튜디오미콘


 

 

 

다섯 개의 불순물

자칫 도도해 보일 수 있는 반듯한 오브제는 여기저기 놓인 불순물들로 인해 스스로를 누그러트리며 부정형의 대지에 안착한다. 마치 대칭의 몸통을 가진 곤충이 울퉁불퉁한 바위 위에 서 있기 위해 발을 여기저기 길게 뻗어 땅과 일체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서측 전면의 양쪽에서 대지경계선에 순응하며 위치한 은빛 계단은 지나가는 행인들을 가게 안으로 유혹하고, 주 출입구 근처에 설치된 T자 모양의 우편함은 건축가 한스 홀라인에 대한 오마주로 상업시설로서 상징성을 더한다. 또한 남측에 놓인 골강판 지붕의 화장실은 준공 후 끼워 넣은 듯한 뒷간 같은 인상을 자아내며, 옥탑에 노출된 엘리베이터 탑을 가리기 위해 설치된 자그마한 벽체는 ‘Seogyo Geunsaeng’이 적힌 네온 간판이 되어 동네의 분위기와 결을 같이한다. 

 

가게, 상가, 근생

주변을 둘러보면 가게, 상가라 불리는 근린생활시설들은 하나같이 어닝(awning)을 다는데 보통 준공 후에 설치하는 것이기 때문에 싸고 가벼운 재료가 주류를 이룬다. 서교근생은 이러한 어닝을 근생 프로그램에서 나타나는 전형성으로 해석하고 건축적 어휘로 포함하고자 하였는데, 그 결과 건물은 긴 어닝을 가진 상가가 층층이 쌓인 듯한 모습을 가진다. 하지만 준공 후 설치하는 어닝만큼 경제적이고 기능적일 수 없기 때문에 이를 그대로 재현(representation)하는 것이어서는 안 되었다. 따라서 스팬드럴 부분에 붙은 연분홍 쐐기의 각도는 기능하지 않는 순간에 멈추며, 가장 비싸고 무거운 재료인 콘크리트로 만들어 기능을 전복하며 장식적 상징으로 남는다. 사용자가 아닌 프로그램 자체의 사회적 재해석을 통해 건물은 자신의 캐릭터를 부여받을 수 있는 것이다.   

 

부조화의 조화

계단실을 포함한 공용 공간은 다양한 재료가 의도적으로 혼합된다. 소위 물성과 디테일을 강조하기보다는 스스로 솔직한 재료를 귀천 없이 나열, 병치하는 방식을 통해 홍대만의 철학을 수용하고 다양한 유추적 해석이 가능하도록 하였다. 스테인리스 미러 마감의 남녀 화장실 출입문을 서로 마주 보게 하여 끝없이 반사되는 사이버틱한 현상을 의도하였다. 그리고 계단실의 검정 스터코와 바닥의 얼룩무늬 석재, 엘리베이터 홀의 레드 트레버틴 벽, 화이트 오크 나무 천장, 구릿빛 메탈릭 페인트가 칠해진 난간, 그리고 원형 펜던트 등 의도적으로 강한 패턴의 재료를 사용함으로써 다소 어둡고 고전적인 분위기를 더하였다. 어울리지 않는 것들을 제외하기보다는 파편적 필요에 따라 무심하게 병치하면서도 조화로울 수 있는가에 대한 실험이다. 

 

다시, 건축

건축은 물론 사회적 산물이지만 그렇다고 다수결에 따라 건물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건축이 서비스업으로 분류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사용자의 만족만이 최종 목표가 될 수 없음을 우리는 잘 안다. 건물은 이타적일 수 있지만 건축은 이타적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우리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좋다. 건물은 공공재라 할지라도 건축은 건축가 자신이 많은 조건들을 통합적으로 사고하고 해석하며 스스로의 규칙을 만들면서 나아가는 매우 내적인 주관적 보이스가 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가장 엄밀해야 할 대상은 치수도 디테일도 아닌 건축가 자기 자신인 것이다.​​ (글 서재원 / 진행 방유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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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계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서재원, 이의행)

설계담당

선우욱

위치

서울시 마포구 와우산로29길 14-12

용도

근린생활시설

대지면적

255.9㎡

건축면적

128.51㎡

연면적

597.14㎡

규모

지상 5층, 지하 1층

주차

4대

높이

16.49m

건폐율

50.21%

용적률

188.41%

구조

철근콘크리트조

외부마감

치장벽돌, UHPC 콘크리트패널

내부마감

노출콘크리트, 스터코(테라코트 그래뉼)

구조설계

(주)이든구조컨설턴트

기계,전기설계

대도엔지니어링

시공

지음씨엠(주)

설계기간

2020. 5. ~ 10.

시공기간

2020. 10. ~ 2021. 9.

조경설계

보타니컬 스튜디오 삼


서재원
서재원은 에이오에이 아키텍츠 건축사사무소의 대표이다. 현대 한국 사회의 다면적 상황을 ‘비판적 수용’의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로 인해 나타나는 부조화와 조화, 구축과 비구축, 합리성과 비합리성, 풍자와 농담 등의 모순적 병치를 통해 한국 사회의 동시대성을 담고자 노력하고 있다. 2017년에 문화체육관광부가 주는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하였고, 2021년에 김태수 크리틱 펠로우십(TSK Critic Fellowship) 수혜자로 선정되었으며, 현재 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강사와 서울시 공공건축가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