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8일 서울 돈의문박물관에서 ‘국가건축정책위원장 승효상에게 한국 건축을 묻다’라는 제목으로 간담회가 열렸다. 행사는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됐다. 우선 사회자인 전진삼(「와이드 AR」 발행인)이 질의하고 승효상이 답변하는 ‘1:1 토크쇼’가 90분 동안 진행됐고, 뒤이어 객석의 질의와 이에 대한 응답이 20분 정도 이어졌다. 이 리포트는 승효상이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답변한 내용을 중심으로 행사를 정리한 것이다. 사실 관계를 명확히 드러내기 위해 원뜻을 크게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교정을 거쳤으며, 일부 단어는 공식 명칭으로 대체했음을 밝힌다.
전진삼(전): 모두 발언을 부탁드린다.
승효상(승): 이 행사는 한국 건축의 현안을 이야기하자는 자리다. 국가건축정책위원회(이하 국건위) 위원장,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운영위원장의 자격으로 왔고 이에 관한 질의가 있으면 좋겠다. 국건위는 건축기본법에 의해 만들어졌다. 건축기본법은 국가가 건축정책위원회로 하여금 국가의 중요 건축 정책을 심의하고, 제도에 관한 문제를 개선하고, 건축문화의 발전에 대해서 기획하도록 그 기능을 규정하고 있다. 국건위는 지난 4기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능이 현저히 약화돼 있어서 취임하고 다른 위원들과 함께 건축기본법에서 규정한 업무 범위를 회복하는 일을 지난 9개월 동안 해왔다. 나에겐 국건위 위원장으로서 15개월 기한이 남아 있다. 그동안 사회 전반의, 건축에 관한 시스템을 더 나은 방향으로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임기를 마칠 수 있으면 좋겠다.
현재 우리 사회는 공급자 위주에서 수요자 위주로 바뀌고 있다. 이 전환기에 우리 사회에 여러 갈등과 대립이 나타날 수 있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민간건축뿐만 아니라 공공건축도 공급자 중심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바뀌는 과정에 있다. 이에 따라가지 못하는 제도와 법령이 굉장히 많은데, 국건위에서 중점적으로 다뤄서 개선하려고 한다.
전: 올 1월 대한건축사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 「건축사」와 인터뷰를 했다. 거기서 “모든 건축의 문제는 사실 근본적으로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또한 페이스북에 오늘 행사가 국건위 위원장인 승효상 본인이 자처한 토크쇼라고 썼다. 한국 건축의 문제가 심각하게, 표면으로 올라온 상태에 대한 불안을 안고 일련의 답을 준비하고 있어서 토크쇼를 자처했나?
승: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보면 한국 건축의 이른바 지도부에 있는 사람들을 향한 공격적 어휘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중 틀린 사항이 많고 일단 물어보면 금방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있어서 언제 한번 모아서 이야기하면 좋지 않을까 했다. 또한 내가 모르는 사항도 많을 수 있기에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좋겠다 싶었다.
사실 건축에 관한 모든 문제와 책임은 건축사에게 있다. 건축을 이루는 시스템 자체가 건축사가 요구해서 만든 게 대부분이다. 조악하고 질 낮은 건축이 생산되는 것은 일선에 있는 건축사가 그렇게라도 해야 건축 행위가 이뤄지니까 한 것이다. 또한 그런 건축물을 요구하는 ‘나쁜 건축주’에게 일할 수 없다고 해야 하는데도, 이를 수임한 건 결국 건축사일 수밖에 없다. 이외에 제도, 법률 등은 우리가 끈질기게 요구하면 바뀔 수밖에 없기에, 문제의 핵심은 우리에게 있고 이에 대한 해결책도 스스로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전: 최근 총괄건축가에 관한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 같다. 1월 4일자 뉴시스 기사를 보면, 서울시 총괄건축가가 학연, 연고로 대물림되고 있다는 곱지 않은 시선이 발견된다. 또한 공공건축가는 공공건축과 관련해서 거버넌스의 주체가 되기도 하지만,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등 서울시의 행사를 위・수탁하는 위치에 있지 않은가 하는 이야기도 기사에 나온다.
승: 나도 그 뉴스를 봤다. 다행히 기사가 단발성으로 끝났다. 이는 뉴스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 기사를 보며 내가 서울대 출신이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는데, 나는 학벌에 관해 의식하지 않고 작업해온 사람이다. 총괄건축가는 2년 만에 그만뒀지만, 2년만에 둘 자리가 아니다. 건축에는 장기 프로젝트가 많고 도시 정책은 단기에 끝나지 않는다. 서구에서는 총괄건축가가 최소 5년, 연임해서 10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게 온당하다고 생각한다. 바르셀로나의 경우 시장의 러닝메이트로 나와서 임기를 같이 한다.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내가 총괄건축가를 하기 전에 서울시 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3년 동안 했었다. 사실상 총괄건축가를 5년 하는 셈이었다. 총괄건축가를 넘겨준 이유는 두 가지다. 우선 처음 생긴 총괄건축가 제도를 제도로 인식하기보다 승효상이라는 사람으로 인식할 수 있어서 현 시장 임기 내에 다른 사람이 대두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총괄건축가는 서울시와 관련된 이익에서 떠나야 하니까 개인적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운영하는 사무실이 어마어마한 적자를 보고 존폐 기로에 섰었다. 이 두 가지 사항 때문에 직위를 넘기는 게 시급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지대에서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맡아야 정책 지속성이 있겠다 싶어서 김영준에게 사정을 해 넘기게 됐다. 3대 총괄건축가인 김승회는 나와 친하지도 않고 같이 일한 적도 없다. 그렇게 엮으면 곤란하다.
전: 최근 총괄건축가 제도의 전국화를 위해 광폭 행보를 한 것 같다. 부산광역시장, 제주특별자치도지사, 울산광역시장, 전남도지사 등을 만나며 전국을 돌아다녔다. 대통령 앞에서 생활 SOC에 관한 정책 발표도 했다. 두 제도의 순기능을 전국적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노력 중인데, 압축된 시간 내에 서울시에서의 경험을 공유하려는 시도로 보인다. 그런데 지방은 서울과 여건이 다르다. 인적자원이 부족한 데다 중앙정부에서 방향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수동적인 상황이다. 제도가 쉽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승: 세계 역사를 보면 행정의 결과가 건축으로 남는 경우가 많다. 건축은 행정에서 중요한 결과물인 셈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행정가들이 건축의 중요성을 인식하느냐 하면, 결단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아주 단편적이다. 서울시도 이 시스템을 자발적으로 도입한 게 아니라 나와 몇 사람이 박원순 시장에게 알려준 결과다. 다른 지방자치단체장을 만나도 마찬가지였다. 건축에 대한 공부가 없었기 때문에 몰랐을 따름이다. 중앙정부에서는 이 제도를 강요하려는 게 아니라 관련 정보를 공유하려는 것이다. 지역에서 못하겠다고 하면 못한다. 최근 이 제도의 중요성이 인식돼 총리 주재 회의에서 거론됐다는 사실이 고무적이다.
전: 지역 건축계의 논의를 살펴보면, 총괄건축가 제도와 공공건축가 제도에 대한 비판 지점이 다르다. 우선 총괄건축가 제도와 관련해 부산을 예로 들면, 수도권에서 활동하는 건축가가 총괄건축가로 추천되는 상황이 공론화되고 있다. 공공건축가 제도에 대해선 논의가 보다 심각한데, 서울과 부산 외의 지역에서는 인력 문제 등으로 부정적 입장이 보인다. 총괄건축가를 통해 공공건축가 제도를 운영한다고 할 때 지역 건축계의 능력 한계 때문에 지역의 공공성이 증진되지 못할 수 있지 않을까? 상응하는 대안이 있는가?
승: 영주시가 이미 해결책을 내놓았다. 영주는 인구가 적지만 서울보다 공공건축가 제도를 먼저 운영했다. 총괄건축가 제도도 명칭은 다르지만 이미 시행한 바 있다. 영주시에서는 지역 건축사사무소가 있는데도 서울, 부산 등 각 지역의 좋은 건축가를 초청해서 공공건축 설계를 시켰다. 그 결과 양질의 공공건축이 생겨서 이를 보러 가는 사람이 생길 정도다. 덕분에 중앙정부의 신뢰를 얻어서 예산도 쉽게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지역 건축사사무소도 다른 지역에서 온 양질의 건축가가 한 좋은 설계 덕분에, 결과적으로 자기에게도 이익이 돌아오니까, 협력하는 관계가 되고 있다고 들었다. 지역 사람만 해당 지역의 공공건축을 하라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전: 지역의 관점에서는 해당 지역의 건축가가 발전하기 위해 공공건축가 제도가 활용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영주에서 괄목할 만한 프로젝트는 어쨌든 수도권에서 온 건축가가 꾸린 작품이지 자생적으로 생산된 것이 아니다.
승: 우리가 꿈꿔야 하는 풍경은 좋은 건축이 많이 있는 세상이지 좋은 건축가가 많이 있는 세상이 아니다. 나도 한국 땅에 있지만 중국, 유럽에 있는 건물도 설계하고 있다. 설계하는 사람의 출신 지역이 중요하다는 의견에 결단코 동의할 수 없고, 설계하는 사람이 어느 지역 사람이든 그 지역 건축이 좋아지면 된다고 본다.
전: 국건위의 달라진 위상에 대해 다들 이야기하고 있다. 다만 최근에는 국건위 밖에서 벌어진 사건들 때문에 피로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세종시신청사 설계공모와 관련해 심사 전문성에 대한 지적이 제기됐고,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이하 임정기념관) 설계공모의 공정성 논란, 잠실주공5단지 재건축을 두고 조합과 서울시의 갈등, 백사마을 재개발 사업에서 건축가의 포지션 문제 등이 불거졌다.
승: 국건위는 국가의 건축 정책, 제도, 문화에 관한 사항을 다루는 기구다. 개별 프로젝트를 다루지 않는다. 국건위에서 중앙정부에 지속적으로 요청하는 것이 있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를 할 때에도, 일정 규모를 넘는 프로젝트는 총괄건축가 자문을 얻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시장 지시로 내려보낸 적이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가 발주한 모든 프로젝트에 대해 국건위 자문을 거치게 한다면 앞서 언급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
현재로서는 개별 부처, 지방자치단체의 프로젝트에 국건위가 관여할 수 없다. 사건이 터진 뒤 해당 사항에 대해 보고를 요청하면, 요청받은 기관에서 국건위에 보고한다. 그 뒤 권고할 뿐이다.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권고니까 쉽게 흘려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세종시신청사 이슈의 경우에는 당선안 설계 변경을 권고했다. 임정기념관은 관련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결과가 나오면 국건위에서 다룰지 말지를 논의할 것이다. 그리고 서울시의 이슈들은 앞에서 말했듯이 국건위에서 먼저 다룰 수 있는 사항이 아니다.
전: 최근 의미 있는 프로젝트로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사업이 있다. 서울시 프로젝트지만 국건위가 상당 부분 개입한다. 승 위원장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 사업을 보는 여러 시각이 있는데, 우선 전시성 공간 정책의 산물이 아니냐는 것이다. 2018년 10월 국제설계공모가 공고되고 2019년 1월 21일 당선작이 발표됐다. 그리고 2021년에 완공하는 일정이다. 과속 주행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승: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내가 71학번인데 그때에도 국전에 관련 제안이 제출될 정도로 오랫동안 건축계 이슈였다. 2009년 오세훈 시장 시절에 지금 모양으로 만들 때에도 몇 년 동안 굉장히 이슈가 됐다. 만들어진 결과에 대해 여러 비판의 목소리가 있었고 고치자는 말이 나왔다. 서울시에서 광화문 포럼을 운영하며 공청회도 열고 전문가 집단의 논의도 진행했다. 논의는 무르익을 대로 무르익었다. 그리고 국제설계공모를 거쳐 결과를 맺은 것이다. 내가 심사위원장을 했지만, 대단히 투명하고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1등작을 뽑았다.
광화문광장 사업은 복잡한 건축물을 시공하는 프로젝트가 아니다. 땅을 파서 도로를 포장하면 끝나는 일이다. 정상적으로 진행된다면 2021년 완공되는데, 이를 일반 건물처럼 생각해서 왜 빨리 하느냐는 선입관이 있는 듯하다. 당선작에 대한 논란은 나도 보고 있다. 사실 도시의 미관은 변한다. 당선작은 2021년에 알맞는 형태를 목표로 낸 것도, 혹은 10년 후를 목표로 한 것도 아닌 듯하다. 그 언저리인 듯하고, 이에 대해 왈가왈부하고 있지만, 그 왈가왈부가 나쁘다고 보지도 않는다. 논의가 필요하면 또 논의해도 된다. 못할 이유가 없다. 다만 굉장히 많은 논의를 거쳐서 나온 결과라는 점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전: 지금 이 시대에 스펙터클한 거대 광장이 필요한가에 대한 시선이 있다. 촛불, 태극기 등 광장을 통해서 경험한 바가 있는데 이것이 21세기에 필요한 광장일까?
승: 광화문광장 사업은 거대한 중앙 분리대 같은 기념비적 공간을 일상 공간으로 되돌리는 일이다. 도시의 일상성 회복이 중요하고, 그 공간에 역사적 층위가 쌓여 있으니 이를 회복하겠다는 것이다. 일단 경복궁 복원 차원에서 사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그 앞이 초라하기 이를 데가 없어서, 월대까지는 복원해야 마땅하다고 봤다. 광화문광장은 서울을 만든 중심축이자 한국인의 공간적 중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이 공간에는 위계질서가 있다. 데모를 해도 북악산 방향으로 한다. 그 방향에 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위에 있는 권력층과 아래의 민중 사이에 대립이 있었다. 이러한 권력의 위계질서 축을 시민에게 돌려주자는 개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도 갈 수 없던 북악산 기슭을 일상화된 도시 공간을 통해서, 경복궁에서 청와대 본관을 거쳐 북악산 기슭까지 국민이 점거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광장의 일상성을 회복하는 단계가 첫 번째로 필요할 거라 생각한다. 내가 알기로 청와대에서 본관을 확대 개방한다는 계획을 여러 번 밝힌 바 있다. 광화문광장 사업이 완료되면 그 흐름이 일반 시민의 축으로 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전: 최근 뉴스를 보면 행정안전부에서 제동을 건다는 얘기가 있다. 서울시와의 관계에서 풀어야 하겠지만 심사위원장으로서 이 같은 문제를 사전에 파악하지 못한 것인가?
승: 행정안전부와 서울시가 여러 차례 협의한 바 있고 기록도 있다. 다만 당선안이, 기술된 내용만 보면 정부종합청사 쪽 도로를 공원으로 만들었는데 그 자리는 사업 범위가 아니다. 하지만 계획 범위에는 속해서 응모자가 자유롭게 안을 낼 수 있게 한 부분이다. 행정안전부에서 당선작을 보고 시행안으로 오해한 것 같다.
전: 당선작에서 동상이 이전된다. 승 위원장은 이순신 장군상은 존치해도 세종대왕상은 입지에 문제가 있음을 전제하며 이전을 수용한다는 말씀을 했었다. 당선안이 설계 변경을 전제로 진행된다고 이해해도 되나?
승: 건축은 현실에 관한 문제다. 먼 이상을 가지고 현실을 고치자고 할 수 없는 노릇이다. 동상에 관한 문제는, 심사위원단에서도 이순신 장군상은 서울 도시 공간을 이해하는 중요한 인자로 시민들의 기억이 존중되면 좋겠다고 얘기한 바 있다. 세종대왕상에 대해선 논란이 있었다. 동상을 세운 지 얼마 안 된 데다가 동상이 너무 압도적이어서 성군인 세종대왕과 맞지 않고, 주변 공간도 부속처럼 보인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이전을 검토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봤다, 이전하라는 게 아니라. 실시설계 기간이 있으니 서울시에서 시민 의견을 듣고 결정할 것으로 본다. 다만 세종대왕상 밑에 지하 공간을 만들기로 돼 있다. 그 밑을 다 파야 한다. 현 자리에 남기려 해도 공사 과정상 옮겼다가 존치해야 한다.
전: 승 위원장이 예전에 제안한 계획안을 보면 현 당선안과 유사한 그림이 보인다. 국가건축정책 전반을 총괄하는 국건위 위원장의 위상을 놓고 봤을 때, 광화문광장이 물론 국가 차원의 프로젝트이지만, 설계공모 심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나 싶다. 예전에 제안한 것과 아주 유사한 프로젝트의 현재화 작업에 심사위원으로 가동됐다.
승: 이는 차원을 달리하는 문제인데, 서울시에서 나를 국건위 위원장 자격으로 심사위원을 오라 한 게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관심을 가졌고 이해도가 높아서 부른 것으로 안다. 그리고 심사위원장을 한 것은 심사위원단에서 결정한 문제이니까 내가 뭐라 답할 게 없다. 그리고 당선안은 백지에서 된 게 아니고 내가 과거에 주장했던, 서측 도로를 폐쇄하고 광장을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붙여서 일상성을 회복하자는 것이 받아들여져서 그 프레임을 놓고 제출된 안이다. 설계공모는 그 안의 공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 물은 것이다. 프레임이 있는 가운데 디자인에 관해 심사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내가 못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한다.
전: 「중앙일보」 시평에 한국 건축계를 둘러싼 후진적 상황을 토로했다. 한국 건축의 현안에 대해 누구보다 많이 고민하고 방법을 찾는 것 같다. 다른 글에서는 정치하는 사람은 제도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했었다. 건축의 공정성, 선진성을 얘기하는 글에서는 건축허가 제도의 문제점을 논하고 제도를 폐지해야 마땅하다고 했다. 이에 대한 방법을 찾고 있는 듯한데 어디까지 진행됐나?
승: 건축 정책을 선진화하는 데에는 세 차원이 있다. 이는 건축이 이뤄지기까지의 세 단계와 연관되는데, 발주 단계, 설계 및 허가 단계, 그리고 시공 단계다. 이 세 단계 모두 우리나라처럼 후진적 행태를 지닌 곳을 찾기 어렵다. 민간 발주는 어쩔 수 없다지만 공공 발주는 제도, 정책으로 바꿀 수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동의하는 것인데, 조달청의 가격입찰 제도를 없애는 방향으로 가려고 한다. 국건위에서 노력하는 부분이다.
건축허가 제도도 논의 중이다. 내 경험으로 우리나라처럼 미개하고 부정부패의 여지를 많이 내포할 정도로 절차가 복잡다단한 곳이 없다. 보고받기로 36번의 심의 절차를 거쳐야 허가에 이른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시스템은 없어져야 마땅하다. 이는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 기관이 소위 갑질을 하는 형태라고 단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임기 내에 다 바꾸지 못한다 하더라도 허가 제도를 좀 더 선진화하는 작업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추진 중이다. 마지막으로 시공에 대한 문제는, 우리나라처럼 설계와 감리를 분리하는 곳이 어디 있나? 이는 정말 잘못된 제도다. 이 제도도 환원하거나 보완책을 찾던가 해야 한다. 선진국 수준에 미치는 제도를 우리가 찾아야 하고 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들이고 있다.
전: 생활 SOC 사업을 정책적으로 마련하고 있다. 각 지역에서 활동하는 젊은 건축인들의 생업과 연결지어서 좋은 환경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승: 건축 물량이 금액 기준으로 한 해에 250조 원이 발주되고 이 중 공공건축은 30조 원 규모에 해당한다. 설계비로 따지면 1조 원에 해당하는 데, 특별한 공공건축물을 제외하면 이때까지 가격입찰제로 진행된 게 사실이다. 우리가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려면 랜드마크가 아니라, 파출소, 동사무소, 보육원 등 동네에서 매일 만나는 건축물이 예뻐야 한다. 그런데 가격입찰 제도하에선 설계비를 낮게 제출한 곳을 선정하기 때문에 건축물이 후지고 그 모양 그 꼴이 된다. 정부에서 양적으로 생활 SOC를 확대하겠다는데 종래의 방법으로 지어진다면 우리의 일상이 더 불행해질 게 뻔하다. 이 때문에 국건위에서 질적 확충도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했고, 발주 시스템을 바꾸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현재 공공건축물은 조달청에서 발주하고 있다. 설계공모로 일일이 진행하려면 인원이 더 필요하다고 한다. 그래서 단계별로 하자길래 가격입찰 대상을 금액 기준 1억 원 수준으로 낮춘 상태다. 점진적으로 설계공모로 완전히 바꾸려고 한다.
전: 마지막으로 고별 말씀을 듣고 자리를 정리하겠다.
승: 내년 이맘때쯤 토크쇼를 한 번 더 하겠다. 그때는 국건위 위원장 임기를 3개월 남긴 시점으로, 오늘 이후로 1년 동안 무엇을 했는지 보고하고 국건위 활동을 마무리 짓는 시간을 갖겠다. 이러한 활동은 국건위 차원의 일만은 아니다. 같이 건축하는 이 시대의 동료들의 도움과 성원, 응원이 필요하다. 우리의 일만도 아니다. 우리 이후 세대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이 일은 단발성으로 끝낼 게 아니라 함께 이뤄내야 할 일이라는 점을 다시 한 번 말씀 드리고, 나의 일만이 아니라 여러분의 일이라는 것을 공유하고자 이 자리를 만들었다. 이야기를 경청해주신 여러분께 동지 의식을 느끼고 무거운 책임감도 아울러서 갖고 있다. 들어주셔서 감사하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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