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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say] 논리적 오류의 풍경

장윤규
사진
김재윤(별도표기 외)
자료제공
운생동건축사사무소
진행
이성제
background

데카르트가 어떻게 미로를 빠져나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면 그것은 그가 연속성의 비밀을 직선적인 궤도 안에서 그리고 자유의 비밀을 영원의 경직성 속에서 찾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물질의 굴곡을 모르는 만큼이나 영혼의 편향을 모르고 있었다.

- 질 들뢰즈 (이찬웅 역), 『주름, 라이프니츠와 바로크』 (문학과지성사, 2004)​ 

 

우리 삶은 수레바퀴처럼 주어진 제도권 구조에 맞물린 하나의 부속품과 같다. 마치 태초에서부터 변화되지 않는 불변의 가치를 향유하며 살아가는 듯한 착각으로 주변의 모든 물체와 환경에 대하여 어떠한 물음도 제기하지 않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특히 매스미디어의 발전은 거대 구조의 틀로 전 세계를 장악하며 조작되고 거짓이 될 수도 있는 가치들을 공유하도록 강요한다.

도시에 새로운 건축을 생성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가는 도시, 환경, 정치, 문화, 예술 등 통상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가치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예술적 작업을, 본질의 의미를 묻는 철학적 관점으로 되돌리며 예술 이전의 순수한 의문으로 회귀시켜야 한다. 들뢰즈의 비유를 빌리자면, 데카르트적 명석판명한 세계의 지배로부터 동시적 이탈을 만들어내는 접힘과 주름의 구조를 통해 사회의 다양한 현상을 다시 바라보고 재결합하는 의미를 지닌다.

현대 도시는 단순한 물리적인 요소로 읽어낼 수 없다. 거대한 시스템의 덩어리이며 하나를 바꾸면 다른 모든 것이 서로 작용하는 네트워크의 산물이 되었다. 네트워크의 시대에 정보화가 결합된 복합화의 시대다. 건축도 공간을 만드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도시 또는 사회적 맥락 혹은 사람들의 사고의 변화와 반응하는 방식을 재정의해주는 것과 맞물려 있다. 사회와 도시, 인간의 가치를 복합화하면서 이것을 담는 문화적 그릇을 형성하기를 원하고 있다. 경계는 허물어지고 더 이상 물리적인 사회는 존재하지 않는다. 과거의 서울이 물리적인 속성에 의해서 제한된 구조였다면, 이제 서울은 수많은 정보의 켜와 무한한 문화의 관통으로 인해서 네트워크의 공동체가 되었다. 서울에서의 건축 행위는 도시와 사회에 대응하는 방식의 무한함을 선택하며 다양한 반응을 요구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울의 강북과 강남은 서로 다른 도시적 풍경을 가진다. 강북은 메타시티와 같이 인간 중심의 미로 구조와 스케일을 구성으로 기본적인 보행길로서의 도시 구조를 근간으로 한다. 이와 다르게 강남은 자동차 중심의 길을 가지며 배타적인 도시 풍경을 형성한다. 자본에 의해서 구성된 도시 풍경은 경제적인 논리에 의해서 침식되며 갈 길을 잃어버렸다. 특히 강남의 상업화된 중소 규모의 건축들은 건축이 가져야 하는 사회적 소통이나 공공성의 입장을 만들어내기 힘들며 표피적인 컨텍스트를 조장하는 데 일조했다고 볼 수 있다.

 

몽유도원도 이상봉타워

 

이러한 도시 풍경을 변화시키는 하나의 방식으로, 기존의 컨텍스트에 반하는 새로운 건축적 어휘를 개입하는 데서 출발한다. 낯설게 하기에 가까운 형태적 혁신성으로부터 주변 질서를 대별하는 그리드 체계의 혁신을 가지려는 것이며 기존의 도시 구조와 구별되는 새로운 체계를 구성하는 방법이다. 조르주 바타유가 이야기하는 에로티즘의 근간인 금기와 위반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거창하게 이야기한다면 누드화된 성찰을 만들어내는 것이며, 기존의 컨텍스트 속에서 축제의 향연을 이끌어내는 것과도 같다. 축제의 시간에는 일상적으로 금기이던 것이 허용되는 것처럼 기존의 도시적 시선을 깨고 낯설음의 극단에 도달하는 새로움을 제안하는 것이다. 이것은 사회로부터 눌려져 있던 몇몇 왜곡된 코드를 되살려내고 드러내는 작업과 연결된다.

현대사회의 모더니티적이며 데카르트적 사고체계에 대한 공격과 각성을 다양한 방식을 통하여 실현하려 한다. 반데카르트적인 구축의 성격을 가진 콜라주나 합성 등의 결합이란 방법을 통해 오히려 비어 있음과 공허함을 강조하여 복잡함과 현란함 속에 불편함과 불안함의 구조를 재탄생시킨다.

근본적으로 이는 새로움을 통해서 건축과 그 외에 관련된 영역의 정의와 통합을 새롭게 만들어내는 계기를 생성하는 것이다. 또한 전통적으로 공간을 규정하는 개념에서 물리적인 요소까지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의문으로 시작한다.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다양한 건축으로 변용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가치마저도 많은 변위와 변형을 만들어내기를 원한다.

‘논리적 오류(Petitio Principii) 작업’은 몬드리안의 면구성 추상 작업을 모더니티적이며 데카르트적 사고체계의 대표적인 대상으로 전제하고, 냉소적이며 유머적인 해체를 재현하는 데 있다. 모더니즘의 표상이라 할 수 있는 직교체계의 좌표를 해체하고 변형함으로써 직교 좌표 틈새에 숨어 있던 공간과 구조를 새로운 시각으로 발견해낸다. 이는 시간적, 공간적 간격을 찾아내는 작업으로,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 등장하는 ‘코라(chora)’ 개념을 떠올리게 한다. 코라는 영속적인 형상과 그것의 감각적인 사본 사이에 존재하는 제3의 유(genos) 위에 각인되어 있는 장소를 의미한다. 비어 있는 듯이 보이지만 비어 있는 것이 아니고 감각적인 세계라는 의미에서 일시적인 것도, 형상이라는 의미에서 영속적인 것도 아닌 모든 것들이 자리 잡을 수도 있고 발생될 수도 있으며 또한 각인될 수도 있는 틈새를 발견하는 것이다. 들뢰즈가 이야기하는 주름론이 보여주는 정도의 사유와 이를 뒷받침하는 내재된 힘들에 관한 사유를 통해 절대성과 데카르트적인 구조를 변형하는 다양체적인 세계를 구성하는 것과도 같다. 앙리 베르그송 철학의 핵심인 ‘삶에서의 차이의 프로세스’를 통해서 생성되는 ‘다르게 생각하기’의 새로운 잠재성의 차원을 생성하는 것이다.

 

퓨처리즘그리드 미동전자 ©Sergio Pirrone

 

‘몽유도원도 이상봉타워’, ‘퓨처리즘그리드 미동전자’, ‘화이트쿼터서클 어린이학교’, 세 개의 프로젝트는 각기 다른 도시 풍경을 형성하는 전략적 차이를 구성한다.

몽유도원도 이상봉타워는 구형의 볼륨을 싸고 있는 또 다른 막의 추상화를 통해 건축을 구축한다. 추상화된 구들의 실루엣을 통해서 건축의 입면적 특성을 모호하게 만들려 한다. 건축적 요소인 수직 루버로 형성된 실루엣은 곡선, 깊이감, 굴곡으로, 안쪽에 존재하는 커튼월을 향한 도시적 시선을 간섭하는 효과를 가진다.

퓨처리즘그리드 미동전자는 직교 좌표의 체계 위에, 두께를 갖는 사선의 그리드인 오프더그리드 표피를 구축하려 한다. 건축의 근본적인 직교체계를 사선화된 체계로 변형하는 작업이다. 기존 건축의 직교체계의 표피를 제거하고 깊이감이 삽입된 사선의 그리드체계를 겹쳐서 속도감과 움직임의 착시를 구성한다. 과거 미래파의 건축이 추구했던 고정된 시점이 아니라 움직이는 듯한 표정을 만들어내려 한다.

화이트쿼터서클 어린이학교는 쿼터서클의 기본적 창호 패턴의 공간화를 통해서 주변 도시와 다른 체계를 구성한다. 사각형 창호로 구성된 기본적인 모듈을 거부함으로써 발생되는 새로운 사건을 기록하려 한다. 쿼터서클은 창호의 패턴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공간이 되며 전체 건축의 형상이 된다.​

 

화이트쿼터서클 어린이학교

 

도시적 컨텍스트의 개념으로 본다면 건축의 물성이 도시에 구축되는 과정에 작용한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지만 세개의 프로젝트를 통해서 물성을 제거하고 가장 추상적인 비물질화의 도시 표피를 구성하려 한다. 근대건축이 지향한 추상미학의 영향을 받아 건축적 표현의 순수함을, 성취와 연결되는 접점을 찾아보려고도 하였다. 물리적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서로 분리되어 다시 재구축되는 과정에서 벽이라는 요소 자체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구조적 역할이 제거됨으로써 추상적인 스킨으로서의 공간을 구성하는 비물질적인 존재로 변화된 것이다.

디지털 시대인 현재, 재료는 물성으로 대변되지 않고 오히려 건물의 표피라는 물질과 비물질 사이에 존재하는 구축의 또 다른 방식으로 변화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성형 수술과 화장으로 대변되는 우리 사회의 외모에 대한 관심, 즉 ‘외피에의 갈구’와 관련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건축 작업에 컴퓨터를 보편적으로 사용하면서 비선형적이고 불규칙한 공간과 형태, 스킨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실제로 이렇게 디지털화한 건축을 인간의 신체와 비교하면, 골격과 신진대사를 담당하는 내장의 비중을 축소하듯 건축의 구조와 공간을 제거하고, 표피의 비중을 최대화하는 작업이 중요한 시기가 되었다. 결국 건축의 추상화된 외피는 건축과 내부 공간, 도시와 주변 컨텍스트의 경계에서 새로운 풍경을 재현하는 하나의 도구로 존재한다.​ <진행 이성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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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규
1964년생으로 서울대학교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신건축 타키론 국제현상, UIA 바르셀로나 국제공모, 이스라엘 평화광장 국제현상 13파이널리스트 등에 입상했 으며, 2001년에는 일본 저널 「10+1」의 세계 건축가 40인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현재 국민대학교 건축대학 교수이며 장윤규건축실험아뜰리에를 운생동건축사사무소로 변화시켜 새로운 건축적 실험을 시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