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와 현재가 나눠 쓰는 집
세허르 델뮬 델뮬 델뮬 아키텍텐 공동대표 × 방유경 기자
방유경(방): 래그돌은 벨기에의 대표적 해안 도시인 크노케-헤이스트에서도 가장 오래된 주거 지구 안에 위치한 주택을 리노베이션한 작업이다. 이 지역 일대 주택이 지닌 건축적 특징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세허르 델뮬(델뮬): 프린스 카렐 지구는 19세기 영국식 정원을 모델로 삼아 조성된 지역이다. 따라서 이곳에 지어진 건축물의 대부분은 영국식 교외주택에서 영감을 받았다. 래그돌 역시 이런 주택 중 하나다. 교외주택들은 주변 환경을 세심하게 살피고 기존의 사구 지형을 고려하여 설계됐다. 집들은 개방적 형태, 경사지붕을 특징으로 하는 3층 규모의 단독주택으로 지어졌다. 명확한 유형을 규정할 수는 없지만 이곳에서 흔히 발견되는 뾰족한 지붕은 교외주택에서 중요한 요소다. 가족 생활의 중심을 상징하는 벽난로 역시 핵심적인 요소로, 전체 공간구성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기단부를 이루는 1층은 주택 아래쪽에 수평 켜를 형성한다. 상층부 파사드에 노출된 목구조는 형태만 모방했을 뿐 실제로는 구조적인 기능을 하지 않는다. 이는 벨기에 해안가에 지어진 교외주택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건물을 수평적인 레이어로 구분하는 벽돌, 미장, 목재 같은 일련의 요소들은 이 지역 주택의 특징이다. 이후 거주자들 사이에서 ‘흰 벽과 붉은 지붕’ 붐이 일어나면서 본연의 형형색색 파사드들이 흰색 페인트에 덮여 사라졌다. 이런 흰색 유행은 1930년대부터 이 지구에 교외 농가 양식이 부상하면서 생긴 결과다.
방: 프로젝트 이름은 ‘헝겊 인형(rag doll)’이라는 뜻이다.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가?
델뮬: 이 동네에서는 집주인들이 자신의 주택에 이름 짓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이 집에는 이미 ‘헝겊 인형’이라는 이름이 붙여져 있었다. 서로 다른 재료와 부속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헝겊 인형의 특징은 우리가 이 집을 설계한 방식과도 연결되는 것 같다.
방: 기존 주택은 시에 등록된 건물로 철거가 불가능하다고 들었다. 보존의 범위는 어디까지였나?
델뮬: 벨기에의 해안지역은 지난 수십 년 동안 대대적인 변화를 겪었다. 해안 주변의 건축 또한 픽처레스크한 단독주택을 대체하여 대규모 아파트가 장벽을 세우듯 들어서면서 전혀 다른 질서의 공간으로 차츰 변모했다. 시의회는 프린스 카렐 지구와 같이 전통적인 해안가 건물들이 남아있는 지역을 주의 깊게 다루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 지역 일대의 성격을 규정하는 건물들을 구분했다. 목록화 작업은 유산의 역사를 존중하는 보존 중심의 태도에서 시작했으나, 추후 개발의 여지는 남겨두었다. 래그돌은 가치 있는 장소로 분류되어 철거는 불가능했지만 생활의 편안함을 위해 일정 부분 조정은 가능했다.
방: 평면을 보면 층별로 공간의 성격이 구분되어 있고, 바닥이 회전하는 지하 주차장과 엘리베이터까지도 새로 설치했다. 건축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용도의 주택을 원했나?
델뮬: 건축주에게 적합한 건물이나 대지를 찾아주는 것뿐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 사이에서 그들이 원하는 주택의 느낌이나 양식을 찾는 과정 또한 어려웠다. 그들이 원하는 공간이 현대적인 집인지 고전적인 집인지, 도시지역을 원하는지 전원지역을 원하는지 알 수 없어 모든 것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고민했다. 우리가 건축주에게서 발견한 이중성은 일종의 ‘아름다운 대조’였다. 이는 ‘유리로만 이루어진 1층과 그 위에 얹어진 교외주택’으로 구체화됐다. 덕분에 그들은 도시와 전원, 리노베이션과 신축, 교외주택과 미니멀리즘 모두를 얻을 수 있었다. 건축주가 이 집을 구매한 것은 건물의 외관이나 상태가 좋아서가 아니라 위치 때문이었다. 건축적 가치가 크지 않고 배치도 좋지 않아 대대적인 수정이 필요했지만, 당시 중병을 앓고 있던 그의 아내를 위해 바닷가에 사는 것이 분명 유익했다. 해변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산책을 하기에 좋은 위치였다.
ⓒPiet Albert Goethals
방: 리노베이션에서 주요하게 생각했던 개념, 설계 전략은 무엇인가? 이곳의 지리적 특성은 설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델뮬: 지하실을 만드는 것은 건축주의 요구 사항이었는데, 그러려면 1층에서 주택 전체를 떠받쳐야 했다. 이 아이디어가 곧 설계의 기본 개념이 되었다. 집을 위아래로 나눠, 경사지붕 아래 옛 모습을 간직한 상부층은 그대로 남기고 그 아래 부분은 완전히 투명한 ‘유리집’으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지나치게 보존적인 태도를 취하기보다 과거를 최대한 존중하되 현대적인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하늘에서 보면 이 집은 여전히 크노케 주택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길을 따라 주택을 지나가면 붉은 경사지붕만 보인다. 자우트 동네의 스카이라인, 주택의 실루엣이나 건물의 볼륨도 달라지지 않았다. 유리로 만들어진 신축 부분이 주된 변화이기는 하지만, 이 공간은 문자적으로나 형태적으로도 기존 주택에 종속되어 있다. 높이 솟아 있는 상부층과 옛 지붕 구조물이 시각적으로 신축 부분을 압도한다. 급진적으로 달라진 공간은 안에 숨어 있어 밖에서 볼 때 잘 드러나지 않는다. 기존 주택은 사구 지형에 맞춰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는 남쪽에 출입구를 내고 북쪽에 생활공간을 두는 이상적인 배치가 아니었다. 투명성을 강조한 1층의 신축 부분과 보이드를 통해 집 안으로 햇빛이 하루 종일 들어오게 했다. 생활공간에서 느껴지는 개방감을 한층 높이기 위해, 자연 사구의 평평한 모래언덕을 본뜬 원형 테라스가 집 전체를 둘러싸도록 했다. 1층 바닥재에 사용된 사암과, 모서리 쪽이 완전히 열리도록 한 미닫이창은 내외부 공간의 유기적인 관계를 강조한다.
방: 시공 과정에서 여러 도전적인 과제가 있었을 것 같다. 공사에 기술적인 어려움은 없었는지, 실제 공사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었는지 알려 달라.
델뮬: 시공 과정은 의외로 합리적이었다. 평면을 보존한 상부층은 시공하는 동안 수평·수직 압력을 견딜 수 있는 마이크로파일(pile)을 세워 지지했다. 그 아래에는 지하층과 1층 유리집을 짓기 위한 ‘작업 공간’이 있었다. 기존 파사드 자리에 도랑을 내고, 대지 곳곳을 뚫어 파일을 세웠다. 기존 주택을 지지하는 마이크로파일덕에 집 아래와 콘크리트가 타설된 지하실에서 흙을 파낼 수 있었다. 이 작업을 하는 동안, 지하를 굴착하는 불도저와 트럭이 파일에 부딪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다.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골격이 새로 만든 지하실 벽체 위에 놓인 다음, 마침내 상부층이 그 위에 안착할 수 있었다. 리노베이션 작업은 확실히 기술적 측면에서 상당히 복잡했다. 시공 과정의 사진을 보면 가느다란 기둥에 의지한 채 공중에 떠 있는 옛 주택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방: 건물의 내부는 시선과 동선이 수직적으로도 연계된다. 기존 집의 공간과는 차별화된 모습인데, 현대적인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공간구성이나 재료 선택 등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델뮬: 이중성이란 특성은 외부보다 내부에서 뚜렷하게 구체화됐다. 투명성을 강조한 1층과 새로 만든 지하층은 미니멀한 가구를 통해 현대적인 분위기의 생활공간을 형성한다. 가장 인상적인 요소 중 하나는 집 전체를 수직으로 연결하는 흰색(으로 도장된) 철제 계단이다. 반투명한 구조의 계단은 타공된 계단판과 오픈된 철판 공간을 통해 빛이 아래쪽으로 소용돌이치며 내려가게 한다. 1층은 옛 목재 지붕과 어울리는 오레곤 나무 베니어로 마감된 중앙 볼륨과 사암 바닥이 현대적인 느낌을 자아낸다. 상부에 있는 기존 주택 공간은 원래 분위기와 색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전체적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 SPACE, 스페이스, 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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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lmulle Delmulle Architecten (Seger Delmulle, Fra
Knokke-Heist, Belgium
single house
940㎡
106㎡
390㎡
지상 3층, 지하 1층
2 대
10.48m
11.28%
18.3%
concrete, brick, timber structure
glass, limewash brick, red tiled roof
plastering, wood, natural stone
Util Struktuurstudies
demolition ‒ GLK / foundation ‒ Franki
Nov. 2015 ‒ June 2016
Sep. 2016 ‒ Dec. 2019
Denis Dujardin